생성과 구성
시대적 미의식에 쉽사리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조형언어를 고집스럽게 추구해왔다고 하는 것은 단연 이채로움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신념을 피력한 것이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나 현대미술의 중심에 위치하면서도 주류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것은 자신과 용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의 데뷔시절과 이후의 전개양상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 이로서 시사된다. 이 시기를 통해 많은 전시에서의 수상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그만큼 화려한 수상경력을 지닌 작가도 많지 않을 것이다.
김태호(金泰浩)의 지금까지 조형적 편력은 대체로 세 개의 시대와 방법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 같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걸쳐 지속해온 <형상Form> 시리즈가 그 하나요, 1980년대 후반에 시도된 종이 작업과 그것을 통한 전면화의 작업이 또 하나며, 2000년에 오면서 그리드Grid의 구조 속에 치밀한 내재적 리듬을 추구해오고 있는 근작이 또 하나다. 30년을 상회하는 작가의 편력으로서는 비교적 간략한 편이다. 변화가 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자신에 충실해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 30년의 우리 현대미술의 기상도를 참작해볼 때 더욱 그런 인상을 준다. 그의 작가로서의 데뷔 시기인 197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 현대미술은 금욕적인 단색이 주조가 되면서 화면에서 일체의 일루전을 기피하던 시대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가 형상에 몰두해왔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논평자들이 그를 두고 "철저한 장인기질"3)의 소유자로 평가하고 있음은 어쩌면 이 일관성에 그대로 연계된다 할 수 있다. 결코 우연성에 의지하지 않은 치밀한 계획과 실천이 철저한 장인적 기질에 의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게 보인다. 그가 한 시대의 미의식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형상세계를 천착해온 것도 이에 말미암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예술가는 있어도 장인은 없다라는 말이 우리 미술계에 회자되고 있다. 예술가로서의 겉멋만 횡행하고 있지, 예술을 지탱시켜줄 철저한 장인정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장인적 기질이 없는 예술가들의 말로를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보아온 터이다. 손쉽게 기계적 작업에 의존하는 측면이 많아지고 있는 현대에 올수록 이 같은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도 그의 작업태도는 교훈으로서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시인 조정권(趙鼎權)이 그를 두고 "머리 속에서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부터 완결성을 미리 염두에 두는 면밀한 사고형의 작가"4)라는 지적 역시 철저한 장인정신을 소유한 작가라는 의미를 함축한 것이다. 작가에 따라 굴곡이 심한 경우가 있다. 때로 뛰어난 작품이 창작되다가도 때로는 타작을 남발하는 경우 말이다. 이 일관성의 결여는 말할 나위도 없이 장인정신이 뒷받침되지 않는 데서 나타나는 형상에 다름 아니다. 김태호의 작품이 초기에서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고른 호흡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다름 아닌 철저한 장인정신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 ‘생성과 구성’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