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준 Jeong Seong Joon
동물 희극, 파라다이스로의 여정
정성준 작가의 작업들은 매번 조금씩 변화하여 왔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의 작업은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주제와 관계되는 미술은 주로 환경미술에서 다루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여타 환경미술과의 공통된 주제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환경미술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일반적인 환경미술과는 달리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로버트 스미슨(Robert Smithson, 1938-1973)의 대지미술(Land Art)이나 지오바니 안셀모(Giovanni Anselmo, 1934- )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계통의 작품들은 일반인들이 봤을 때 매우 이해하기 어렵고 다가가기 힘든 작품들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이에 반하여 정성준의 작품은 캔버스 유화나 조각과 같은 전통적인 매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는 이미지들이 눈에 익숙한 형태들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훨씬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다. 이에 더하여 그는 성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즉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좋아할 만한 동물들을 작품의 전면에 내세우는 작업을 행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너무나 자연스럽게 작품에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성준의 작업에서 보이는 이미지들은 과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최근에 제작된 일련의 작업들에 있어서, 주된 이미지들의 구성은 일단의 동물들이 도심 한복판에서 차를 타거나 트램을 타면서, 또는 직접 걸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는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당나귀와 작은 원숭이, 북극곰과 남극의 펭귄 외에도 돼지나 라쿤, 닭, 여우 등의 동물들은 그의 작품 속에서 어떤 목적지를 찾아 떠나는 여정의 주인공들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여정의 주인공들과 그들이 직접 타는 이동수단 외의 (사람들, 건물들 등과 같은) 모든 것들은 회색계열의 무채색(achromatic color)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동물 주인공들과 그들의 운송수단은 생생한 컬러로 그려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나머지 것들이 무채색으로 그려진 것은, 얼핏 보기에, 주인공을 더욱 부각시키고자 하는 이유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무채색이란 ‘아닌, 없는’이란 부정적인 의미의 어근 ‘a-’와 고대 그리스어로 색(color)이란 말에 해당하는 ‘크로마(chroma)’가 합쳐진 단어로 문자 그대로 ‘색이 없는(without color)’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흰색, 검은색으로 조합으로만 만들어진 회색계열의 무채색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이나 죽음 등을 암시한다. 따라서 현대의 인간과 그들이 이루어 놓은 도시의 모든 것들은 한마디로 현대문명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것들이 무채색으로 그려진 다는 것은 생명력이 빠져버린 이 현대문명의 미래가 불분명하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우리는 생생한 색채로 채색된 동물들만이 현대문명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들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작가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성준 작가는 이와 같은 지구의 미래를 좌우할 아주 심각한 문제를 있는 그대로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이 문제를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게 전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심각한 문제를 있는 그대로 감당하기에는 복잡다단한 현대인들의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이들에게는 심각한 것보다는 가벼운 것이 더 오래가고 쉽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친근한 동물들을 의인화(擬人化)했던 고대 그리스의 작가인 이솝(Aesop, BC 620년경-BC564)의 우화만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다. 이솝의 우화가 주는 교훈은 시대를 넘어 이어져 오고 있으며 아직까지 우리 모두의 기억에 남아있다.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 주목해야할 것은 작품 곳곳에서 드러나는 재치 있는 풍자적 요소이다. 예를 들어 해적 모습의 트럼프(Donald Trump, 1946- )나 굴뚝에서 나오는 북극곰 모양의 연기, 마스크를 착용한 자유의 여신상 등은 심각한 환경오염문제를 해학적(諧謔的)인 코드로 가볍게 제기함으로써 우리에게 웃음을 줌과 동시에 기억의 저장고에 남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이러한 동물들의 여정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그 종착지는 과연 어디인가? 이것을 유추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모든 작품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함께 이들의 여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알아야만 한다. 정성준 작가가 그리는 동물들의 여정에서 맨 처음 등장하는 동물들은 북극에 사는 곰과 남극에 사는 펭귄이다. 이들은 왜 긴 여정에 올랐을까? 그것은 현재의 지구 온난화라는 위기 상황 때문이다. 작가는 이러한 지구환경의 문제를 지구 온난화화 관련된 TV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문제에서 생존의 위협에 직면하는 가장 대표적인 동물들이 북극곰과 남극 펭귄일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들이 온난화의 주범을 찾아 극과 극에서 떠나며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겪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상상하여 그려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 펭귄이 빙산을 훔친 범인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결국 이들이 도착하고자 하는 곳은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환경문제에서 벗어나 함께 공존하는 태초의 땅, 지상낙원, 즉 유토피아(utopia)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볼 때, 그의 작품 속 동물들의 여정은 단테(Durante degli Alighieri, 1265년경-1321)의 『신곡 Divine Comedy』과 닮아 있다. 단테의 이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단테는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 등의 안내로 지옥(Inferno)과 연옥(Purgatorio)을 거쳐 결국 천국(Paradiso)에 이르는 장대한 여정을 한다. 이 과정에서 단테는 대악마인 루시퍼(Lucifer)에서부터 배신자 유다(Judas Iscariot) 등을 지옥에서 만나고 연옥을 거쳐 지상낙원에서 신의 사랑을 알게 되며, 이 여정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정성준 작가의 동물들 역시 지옥과도 같은 상황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들은 많은 모험을 하며 도심 속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정성준 작가의 작업은 단테와 달리 천국을 직접 묘사하거나 보여주지는 않는다. 단지 그는 우리가 가야할 방향만을 암시하고자 한다. 따라서 동물들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며 많은 난관들에 봉착할 것이다. 그들은 때론 더욱 암울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으며 그들이 마주치는 환경이 이미 낡아 버린 폐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역설적으로 우리들이 현재의 문제들을 직시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에드워드 노턴 로렌츠(Edward Norton Lorenz, 1917-2008)가 제시했던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에서처럼, 우리가 무심코 사용한 플라스틱 용기들이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더 이상 맑은 공기를 들이마실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정성준 작가의 파라다이스로 향하는 동물들의 희망찬 여정이 비극으로 마무리되지 않도록 행복한 해피엔딩, 즉 동물 희극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여정에 기꺼이 동참해야만 할 것이다.
김병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