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대해
채지민 작가는 작업 초기부터 회화의 속성, 특히 회화의 공간성에 주목했다. 그는 그려진 이미지가 갖는 물리적 평면성과 환영적 공간감 사이에서 해소되지 않는 긴장 관계에 천착했다. 사실 이것은 회화의 오랜 역사 속에서 무수한 화가들이 부딪혔던 문제로, 핍진성을 고민했던 화가들뿐 아니라 재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화가들이 역시 맞닥뜨렸던 그리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오랜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거기에는 익히 알고 있는 삼차원과 이차원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
작가의 회화 이미지에 대한 탐구는 괴리감의 표현을 넘어서 점차 확장되고 심화 되어 왔다. 화면을 하나의 일관성 있는 전체로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그 틈새를 벌리고 이를 가시화하는 방식을 통해 작가는 실재 대상을 묘사한 재현물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자체를 드러낸다. 이를 위해 그는 일점소실점 선원근법에 따라 하나의 소실점을 중심으로 화면 전체를 조직하는 한편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과 동물, 사물 등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운용하여 화면 구성의 밀도를 한층 높였다. 작품 속 요소들은 작가가 오랜 기간 틈틈이 촬영해 온 사진에서 발췌한 것으로 오로지 조형적 고려에 따라 각기 다른 시공간에 속한 것들을 그러모은, 상호 무관한 혼잡물이다. 소실점을 향해 도열한 탄탄한 구성의 화면 안에 맥락 없이 뒤섞인 개별 요소들의 분립으로 인해 이질감과 모호함은 더욱 증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