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화 Sung Yeon-Hwa
자아自我의 기억으로부터, 타자他者에게
‘자아自我’는 자신 안에서 서로 대립하는 존재가 되기도 하고 상호 순응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자아를 ‘주체인 나’와 ‘객체인 나’로 구분된다고 했다. 전자의 경우는 순수한 자기 자신으로 보고 경험, 지각, 상상, 선택, 기억의 주체를 일컫는다고 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피지자被知者’로 명명하고 모든 개인을 그 대상의 범주에 포함한다고 하였다. 주체로서의 자아는 관찰자로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자기는 독자적인 존재가 되면서 외부와 구분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객체의 어떤 현상을 통해 자극을 받은 주체의 기억 속에 이미지가 잔재할 때 그 이미지는 주체의 모든 경험이 존재하게 된다. 객체로부터 자극받은 기억의 표상이 주체인 인간의 정서에 자극과 변화를 주게 되고 새로운 창작의 이미지를 구현하게 해 준다. 자아의 주체와 객체 간의 상호작용은 창작자에 있어서 혈류와도 같은 기능으로 작동한다.
실존주의 철학자인 메를로 퐁티(Merleau Ponty)는 자아의 인식에 대해 저서 『부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주체성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어 3세기 동안 산재해 왔던 이들의 철학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몽테뉴가 가장 좋아했던 자기, 아니면 파스칼이 가장 증오했던 자기, 사람이 매일 기록하거나 혹은 자기의 용감함, 도피, 단절, 변덕스러움에 주목하고 이를 알 수 없는 것으로 실험하고 검증한 자기가 아닐까?”

창작에 대한 작가들의 많은 행위는 존재하는 것, 상상에 의한 것, 그리고 기억에 의존하는 것, 세 가지 방식을 통해 행해진다. 과거의 기억에서 도출하는 작업은 ‘자아自我’를 담아내는 작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차갑고 어두웠던 과거의 기억을 작품에 담기도 하고, 힘들고 혼란스러웠던 기억을 작업에 담기도 한다. 이런 과거의 기억은 작가에게 시간의 경계를 넘어선 거울과 같은 모티브가 된다. 작품은 작가의 정서가 투영되고 내면을 표현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가 작업을 할 때 그 행위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만 아니다. 드러나지 않는 어떤 것을 가시화시키고 의미를 부여하고 조형화함으로써 관람자에게 작가의 명확한 의도를 전달할 수 있다. 창작에서의 자아 표현은 분명한 욕구의 표출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본능과는 다른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욕구로 재현된다. 삶의 시간 속에 축적된 기억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주체뿐만 아니라 주체를 둘러싼 객체를 포함하고 주체와 객체 사이에서 자각한 자아로서 재현의 시작이 열린다.

작가 성연화는 과거의 자아가 관찰자로서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객체로부터 주고받은 따스하고 향긋한 기억을 끌어낸다. 자아의 기억에서 끌어낸 감각을 아주 절제된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고 독자적이다. 그의 작업의 표현은 물리적 상호작용을 통해 완성된다. 선線과 면面의 작용이다. 선은 과거의 자아에서 도출된 요소이고 면은 현재의 자아에서 도출된 자아이다. 선과 면이 한 화면 위에서 아주 강한 충돌을 일으킴으로써 작가 성연화 작업의 정체성이 완성되는 것이다. 작가의 정체성은 스스로에 대해 반복적으로 자문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정통적 서법에서 탈피하고자 오랜 시간 시도해 왔고, 회화 작가로 활동하면서 주체가 객체를 찾은 샘이다. 서예 붓의 중봉을 사용한 갈필 기법으로 표현된 선은 한지에 스며든 부드러운 색과 파라핀의 작용으로 안착한 면과 충돌한다. 의도적이지 않으면 공존할 수 없는 표현이나 상호 엄청난 긴장감으로 다가온다. 선에서도 색채에서도 절제의 감정은 절정을 이룬다. 최소한의 선과 최소한의 색에서 일어나는 충돌 사이에 평온함과 온화함이 발현된다.
면은 한지를 향으로 태워 직사각형으로 잘라 캔버스 화면에 크기별로 올리는 첫 단계의 작업으로 나타난다. 그 후 색감을 먹이는 방법은 ‘중색기법’으로 전통적 채색 기법을 준한다. 면을 형성하고 전체를 아우르기 위해 주된 역할을 하는 갈색은 어머니를 기억할 만큼 상징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가에게 향기를 담고 기운을 느끼게 하는 색깔이다. 파란색이나 초록색의 화려함을 차분하게 하고, 긴장감을 온화하게 다져주는 색 그 이상이다. 한색임에도 온기를 전달할 수 있는 것 또한 갈색의 역할이다. 사각으로 구성된 화면의 딱딱함과 차가움을 완화해 주기도 한다. 한 작품 속에 큰 면에서 작은 면으로 나열된 흐름은 한지와 파라핀이라는 재료의 새로운 기법을 통해 구현된다. 극히 미니멀한 면 작업은 마음의 조각으로 연결된다.
선은 과거의 기억에서 도출되는 서예 작업의 절제미에서 도출한다. 서법의 정통성에서 탈피하고자 한 반복적인 시도에서 생겨나고, 선을 추상적으로 형상화하는 시도에서 발현된다. 작품의 완성 단계에서 작가는 어떤 추상적인 선의 형태를 면 작업이 완성된 화면 위에 과감하게 던져 놓는다. 작가 자신이라고 여기는 선은 한 작품에 기껏 하나의 선만이 존재한다. 한번 올린 선은 옮길 수도 변경할 수도 없다. 갈필의 가늘고 긴 선이지만 관람객의 뇌리에는 아주 강한 느낌으로 작용할 수 있는 요소다. 그렇게 한 작품 위에 하나의 선만이 존재하는 작업 방식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행위이자 정점이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순간을 통해 충돌과 완성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아주 부담스러운 행위지만 작업의 완성을 위해 기꺼이 시도한다. 새로운 자아 속에 주체와 객체의 만남의 순간이다. 그의 작업에서 면과 선의 양적 불균형은 감성적 균형을 통해 충족되면서 구조와 감성의 소통은 서정적인 사유를 가능케 한다.

성연화의 작품에 내재하는 정신적인 요소는 가시적인 현상에 의해 관람객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깊이 집착하지 않는다. 전달하고자 하는 따스함과 평온함의 기억을 전달하기 위한 작가의 감각적 활동의 제한을 두지 않고 완성에 이르는 순간 가시성 이상의 감성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청각을 통한 음악을, 후각을 통한 향기를, 손을 통한 촉각을 동원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평온함을 느끼게 하고자 하는 순수한 목적에 도달한다. 디지털 시대에서 벗어나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자아의 기억으로부터 평온함을 타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선의의 집착을 보이는 작가이다. 작가의 기억을 느끼게 하는 것을 벗어나 작품을 보는 타자 자신의 따스한 기억을 끌어내고자 하는 것이 도달하고자 하는 작업의 목적이다.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정종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