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애 Choi Myung Ae
예견된 신자연주의의 귀환
작가 최명애의 이번 전시는 작가로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다. 1990년, 작가는 <달리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가진 적이 있다. 어두운 들판과 같은 열린 공간에서 질주하는 사람들의 역동적인 자세로 긴장감을 던져주고, 가로 세로의 직선적 붓 놀림에서 나타나는 추상성은 상대적인 안정감을 더해 강한 정체성이 드러나는 작품들이었다. 작업을 하기 위한 작가 노트에서 볼 수 있는 시기별 고민의 글을 통해 유추해 볼 때, 불안정한 사회적 정치적 기류가 대세였던 당시의 일상의 형상성을 반영한 작업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평론가 서성록은 그녀의 개인전 비평문에서 작가가 스스로가 낭만주의적이고 표현주의적이며 감정환기적이라는 세 가지 성향에 대해 해석하였다.

“간략화된 필치로 부호화된 등장인물을 서정적으로 나타낸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적이고, 서술적이지 않으면서도 구체적 사실을 문제 삼고 있다는 태도 면에서 표현주의적이며, 끝으로 색깔과 구도의 자유로움을 꾀하는 측면에서 보면 다분히 감정환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자연의 숲을 그리는 작가로 돌아왔다. 자연에 대한 예증적재현 방식으로 본질적인 탐구를 통해 나만의 숲이 아닌 너와 나의 숲을 그리는 작가로 다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의 작업과 현재의 작업이 완전히 다른 성향을 띄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내재된 조형적인 맥락에서 공통적인 성향을 이어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위에서 이야기한 작가의 성향에 대한 세 가지 요소가 현재의 작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달리는 사람 대신 자연의 숲이 주제로 등장하고 있고 나무와 풀 또는 꽃에 대한 사유에 과감한 생략기법으로 서사적 접근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적 성향이 그대로 살아있다. 숲의 요소 하나하나에 구체적이지 않으면서 숲의 일부 또는 전체를 화면에 과감하게 담아내고 있으며 수직과 수평적인 대담한 구도와 필치를 볼 때 이 또한 표현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자연주의 성향의 작가 작업방식이 생각과 감정보다 몸으로 담아내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감정환기적 성향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들은 작업 의욕을 억누르고 있었던 지난 30여 년의 시간 동안 망각상태가 아닌 예술적 행위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져 왔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잠시 유예되고 닫혀 있었을 뿐 작업에 대한 기를 발산할 준비가 기저에 내재되어 있었다.

작가의 작업에서 공통적인 맥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달리는 사람들> 시리즈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적이면서 추상적인 형태의 표현이 현재의 작업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주제인 달리는 사람들과 어두운 색감, 이들은 분명 현재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나무, 풀, 꽃 그리고 밝고 화려한 색감들과는 분명 완전히 다른 작업의 성향이다. 그러나 작업 속에 일부 요소로 자리 잡고 있는 수직과 수평의 과감한 운필, 화면에 대담하게 등장시킨 추상적인 요소들은 긴 세월 동안 내재된 작가의 조형적 성향이 현재의 작업에서 재생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늘에 이르러 그녀의 작업방식은 신자연주의적 탐구에서 시작한다. 신자연주의는 인간의 본능에서 생성되는 욕망과 인식들이 극히 개인의 관점에 근원을 두고 있다. 생각과 감정이 앞서지 않고 몸이 움직이는 것에서 재현되고 발현되는 것이 신자연주의의 기본개념이다. 그러기에 개인의 특성이 중심이 되고 자기중심의 주체적 성향을 이룬다. 이렇듯 작가 최명애는 스스로의 몸에서 느끼고 발현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자주 오르내리는 관악산의 숲에서 보이는 나무와 바위와 꽃이 작업으로 나타난다. 숲을 형성하고 있는 나무와 풀의 원초적인 형태와 질감들을 가감 없이 캔버스에 담아내려고 한다. 아침에 산에 오를 때는 아침을 그리고 맑은 날에는 맑은 날의 기억을 담은 숲을 캔버스에 쏟아낸다. 숲이 가지는 친근감과 생명력에 대한 기억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것은 현장 사생의 서양적 방식과는 다른 동양적인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의 이동을 통해 재구성한 완벽하게 자기화한 표현이다. 화면 위에 그린다는 것은 개인의 필체처럼 그냥 드러나는 기질의 일부로써 자동기술적으로 쏟아 붓고 다시 화면 속에서 재구성하고 조정하는 방식을 취한다.

신자연주의로서 작가의 작업은 몇 가지 특성을 감지할 수 있다. 첫째는 구상성에 내포되어있는 추상성이다. 특유의 운필법으로 구사해 내고 있는 선과 색의 균형은 몸으로 담아내는 숲에 대한 구상적 표현방식임에도 추상성을 보이고 있다. 나무를 그리고 꽃을 그리되 형태와 선에서 자유분방한 추상적 성향의 표현 방식에는 시어와 같이 압축되어 있고 음악처럼 추상적인 감성이 담겨있다. 이러한 요소의 바리에이션은 새로운 정체성으로 정착돼간다. 둘째는 공간감이다. 자연의 숲임에도 그녀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공간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무한의 공간과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유한의 공간을 넘나든다. 셋째는 절제된 색감이다. 강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색은 절제된 사용법으로 안정적이고 편안한 감성으로 다가서게 한다. 특히 화면의 세로 또는 가로로 놓이는 과감한 구도임에도 부담 없이 전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색감의 균형에서 나온다.

삶과 숲과 작업이 밀착되는 작업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노력으로 작품은 완성단계에 이른다.언젠가는 붓을 다시 잡으리라는 표출되지 못했던 의지를 실현하고 있는 지금, 긴장되고 조금의 두려움이 함께하는 공간에서 생각과 감성보다는 자연의 숲과 마주하는 몸의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이데아를 가진 신념의 사람이기보다는 변화하는 개인사를 주제 삼아 그에 따른 조형언어를 찾아내는 과정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내 스스로가 숲을 보고 나의 작업을 이어가지만, 그녀가 그리는 작업은 작가만의 숲이 아닌 너와 나의 숲이다. 자연에 대한 사유를 통해 작품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이 나와 내 주위의 모든 사람으로 확대되기를 원한다.

과거의 작업에는 도덕성과 유미주의적 논쟁에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고민한 적도 있었고, 그 의미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녀는 요즘 나와 남의 가슴을 뛰게 하는 숲을 그리기 위해 매일 선과 색을 긋고 칠한다고, 그렇게 그린 내 그림은 삶의 시적 표현이라고 고백한다.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정종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