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필 Chae Sung-Pil
흙으로부터 보이는 세상까지
몇 년 전부터 채성필의 작품은 자연 속 형상들의 근원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고 있다. 그의 작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괄적 의미의 한 단어를 찾는다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흙’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있다.
채성필에게 있어, 흙은 모델이자 작업의 원천이다.
작품제작의 방법적 기본은 자연자체의 생산 방식에서 유추해 내는 ‘회화적 poïétique’ 라 할 수 있다. 즉, 그의 작업은 자연, 혹은 고국에 대한 회귀적 감상을 지닌 여행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여행 중 채집한 ‘흙’은 감상적 모티브를 포함한 마티에르로 사용되고, 이 ‘흙’이라는 마티에르는 ‘흙의 공간-이미지, 주제’을 표현하는 직접적 도구가 된다.
흙은 그가 "근원적 공간"이라고 이름 붙인 한 공간을 창조하게 한다. 그리고 그 공간은 땅을 생겨나게 하고, 산수를 생겨나게 하고, 근본적인 풍요로움의 영역을 생겨나게 한다. 즉, 그에게 있어서 흙은 하나의 모델이기도 하지만 특히 하나의 원형(原型)이며 독특한 미학을 전개하는 재료이기도 하다……

…… 그의 작업에 있어서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마티에르는 ‘물’이라 할 수 있다. ‘물’과 ‘흙’은 그 상호 원소적 배합 또는 이질적 성질을 통해, 그가 즐겨 사용하는 ‘흘려지게 하기’, ‘그려지게 하기’라는 마술 같은 테크닉을 완성시킨다. 이 원소적 특성은 그가 말하는 ‘상징’과 ‘본질’, 즉, 근원을 형성하는 동양의 오행 또는 서구의 4원소론과 함께 그의 철학적 배경을 이루는 대목이며, 동양 전통미학과 서구적 조형론이 결합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이미지들(들판의 풍경들,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 등)을 보고는, 조금 가까이 들여다 보면, 그의 화면 위에는 어떤 인위적이거나 모방적 외형을 지닌 형상도 존재하지 않음을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그의 화면에 존재하는 것들은 ‘흙’과 ‘물’이 자연히 만들어내는 흔적들이며, 그렇게 ‘그려진 것들’이다. 근원소적 물질들을 이용한 자연 그대로의 창조된 이미지이다. 단지 그 형상이 우리의 인식 안에 자연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나무가 되고, 들판이 되며, 물결치는 바다가 되고, 바람에 이는 대지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외형의 관찰 속에서가 아닌 형태를 우발하는 방법 속에서, 서양의 현대성은 동양의 미학적 전통과 만난다. 이것은 한 공간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그리고, 동서양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는 만남이다. 자연이 천천히 활동하는 긴 시간, 지질학적 시간 그리고 움직임을 포착하는 순간 등이 서로 교차하며, 자연현상의 순환적 귀환(반복)들도 이에 포함된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화면안에서 근원과 본질을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조형예술학교수 / 미술평론가> Anne KERDRA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