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제 아세프자 Mojé Assefjah
Prof. Dr. Anne-Marie Bonnet 평론글
모제 아세프자는 신작을 통해 추상과 구상, 과거와 현재, 동서양의 시각적 및 회화적 문화를 넘나드는 작가만의 독창적 시각언어를 선보인다. 작가는 작품을 ‘구성’하는 것과 동시에 ‘직관’적으로 풀어내면서 생기는 긴장감을 변증법적 방식이 아닌, 측정할 수 없는 무언가를 모색하는 방식으로 풀어낸다. 가까워지면서 멀어지고, 밀도 있으면서 투명하고, 만져지면서 만져지지 않는 것들이 한 화면에 어우러진다. 작가만의 풍부하고 강렬한 색채는 촉감적 감각을 유발하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투명함의 미묘한 뉘앙스마저 경험케 한다.

작가는 작품의 ‘형상’과 그를 이루는 ‘배경’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는데 각자가 서로 드러났다 사라지며 수수께끼처럼 미묘한 방식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전시명 ‘Tales from the Waves’가 암시하듯, 아세프자의 작품은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자연’과 함께 숨 쉰다. 작품 속 파도는 마치 바다와 대양이 달과 나누는 대화와 같다. 굽이치는 파도의 형태가 때로는 명상적이고 때로는 무엇인가를 요청하는 듯한데, 동시에 높고 낮은 우리네 인생의 기복을 비유하는 듯하다. 전시명은 끊임없이 흐르는, 언뜻 보면 같아 보이지만 늘 다른 모습으로 움직이는 어떤 동적인 흐름을 연상케 한다.

아세프자의 파도는 광활한 바다의 무한함을 떠올리게 한다. 아름다운 파도가 리드미컬하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멀어진다. 곧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광활한 지평선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파도의 굽이치는 움직임은 공간에 리듬을 전달하며 그 끝없는 무한함으로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이에 자연이라는 화두가 대두되며, 오늘날 자연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인류세(Anthropocene, 환경훼손의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현재 인류 이후의 시대) 안의 작금의 우리에게 아세프자의 작품은 자연의 연약함과 소중함을 상기시킨다. 풍부한 색채의 회화가 풍성하게 만개한 꽃, 무성한 초원과 숲 그리고 끊임없이 흐르는 물의 수려함을 떠올리게 한다. 굽이치며 휘몰아치는 선들 너머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여울과 무한의 지평선이 펼쳐진다.

특유의 캘리그래피 적 선은 작가의 뿌리인 페르시아 예술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서예 예술에서 원천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서양 회화의 로브(robe, 길게 흐르는 의복)에 대한 작가의 심도 있는 연구와 시각적 경험의 결과이기도 한데 이렇게 작가가 만들어 낸 특유의 필체는 회화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문화교류 공용어 (lingua franca 링구아 프랑카)가 되기도 한다. 최신작에서 공간을 구조화하는 선들이나, 구조물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이는 페르시아 미세화(중세 기도서 삽화) 혹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공간 스케치와 선형적 구조물들을 연상시킨다. 풍부한 색, 넘치는 에너지, 베일같이 섬세한 모양들이 식물이나 유기체적 형태들과 결합되며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을 선사한다. 물질적이면서 동시에 비물질적이고, 감각적이면서 촉각적이고, 또 손에 잡히지 않는 요소들이 마치 캔버스 안에서 떠오르듯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작품 속 다채로운 색 구성은 감각적이면서 동시에 헤어져 나올 수 없을 만큼 정신적이다.

때로는 꽃과 같이 장식적인 형태에서 읽혀지는 모티브들이 현실과 예술 사이의 간극을 더해주며, 마치 사실주의 화풍이 사실은 그저 고차원적 트롱프뢰유 (trompe l'oeil 실물로 착각할 정도로 정밀하고 생생하게 묘사된 그림)에 그친다는 것을 위트 있게 상기시켜 준다. 작가는 섬세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브러시 스트로크로 현실과 예술 사이의 유동적 경계를 시적이면서 철학적으로 풀어낸다. 환영이 넘쳐나는 후기 현대 디지털 시대에 감각적인 작가의 작품은 시적이지만 실체적인 촉감각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안-마리 보네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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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물감의 물질성이 관능적인 방식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붓이 지나고 난 흔적, 색채의 밝고 어두움, 물감이 흐르고 응고된 모습들이 즉각적으로 인지되지 않지만 때로는 투명하게 때로는 두껍게 나타난다.

작품의 기호는 우리네 현실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은유하며 연상시키는 방식이다. 현실의 경험들이 미술 언어를 통해 색채와 형태로 재현된다.

최근 몇 년 그녀의 작업을 돌이켜 보면 작가의 예술적 특성이 더 분명해 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은 구조적으로 명료해지고, 강해지고 탄탄해짐과 동시에 에너지의 비움과 채움으로 한층 더 가벼워지며 그 조화를 이루어 내고 있다. 마치 발레 댄서가 관중으로 하여금 본인의 육체적 노력과 땀을 잊게 하면서 우아함과 ‘존재의 가벼움’을 만드는 것처럼. 하지만 가벼움은 일시적이다. 작품을 오래 바라보면 볼수록, 대상은 한층 더 복합적인 모습으로 그 깊이감을 드러낸다.

모제 아세프자의 작품은 어쩌면 ‘존재의 깊이를 짐작게 하는 수사학’과 같다.


안-마리 보네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