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광범 Jang Kwang-Bum
Reflection 장광범 – 시간을 관찰하는 예술가의 눈과 빛으로 드러난 시간의 형태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미지의 존재는 빛을 통해서만 참모습을 세상에 드러내 보인다.

18세기 유럽에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지적 운동인 계몽주의가 있었다. 계몽주의는 프랑스어로 Les Lumières라고 하며 이는 빛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미신이 팽배하던 시절, 불가사의한 영역에 숨겨져 있던 자연 현상과 미지의 존재들을 사유와 이성의 빛으로 밝혀 대상의 참모습을 세상에 알렸다.

대상을 관찰하고 사유하는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예술가의 눈은, 형상이 없다고 과학자들이 결론 내린 것들에 대해서도 형태를 찾아낸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술가들은 현시대의 계몽주의자들처럼 새로움을 밝히는 빛이다. 예술가들의 예민한 눈과 예리한 사유를 통해 기존에 발견하지 못했던, 혹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의 형태가 새롭게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예전에 수묵화의 여백으로 공기의 형상을 만든 산수화가들이 있었고 빛을 여러 색으로 분해한 뒤 대상에 투여하여 공기의 형상과 빛의 형상을 창조하는 인상파 화가들이 있었다. 이 외에도 “보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한다”고 말한 파울 클레의 말처럼 형상이 없는 것들의 형상을 창조하려는 예술가들의 시도와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에콜 데 보자르의 떨어져 나간 오래된 벽의 한 귀퉁이를 통해 시간의 형상을 발견한 작가 장광범 역시도 자연의 비가시적 요소를 형상으로 옮기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이어오고 있다.

장광범의 작업에서 쌓아 올려진 물감의 층은 시간의 축적을 암시한다. 그는 물감 층을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여러 컬러의 층 사이에 흰색 층을 켜켜이 끼어 넣는다. 물감의 스펙트럼에서 흰색이 빛을 상징하듯이 장광범 작업에서 흰색 층은 시간의 지층과 결, 시간의 형상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빛의 역할을 한다. 물감 층이 어느 정도 쌓이고 마르면 그는 다시 일부분을 깎아내어 물감의 지층, 다시 말해 그 동안 쌓아 올린 시간의 지층을 드러나게 한다. 깎여진 면에 드러난 다양한 색감을 지닌 지층들은 그 사이 사이마다 끼어 있는 흰색 층으로 인해 마침내 그 형상이 더 또렷이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장광범이라는 예술가의 눈과 흰색이라는 두 가지 빛이 “시간”에 형상을 부여하고 가시적인 세계로 이끌어냈다.

작가는 산 시리즈를 설명하면서 산의 이미지는 실제로 존재하는 산이 아니며, 시간의 축적된 모습이 솟아오르는 산과 같은 형상으로 구현된 것이라고 말한다. 시간의 형상에 대해 고민한 결과물이 융기화(솟아오름) 된 추상 형태로 표현된 셈이다. 작품에 나타난 산, 물, 불의 이미지들은 사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세하게 변화하는 유동적인 형상, 대상 안에서 흐르고 움직이는 시간의 형상을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시간의 변화가 자연 요소들 안에 시각적인 율동감을 준다는 점을 깨달은 그는 미묘한 변화를 형상으로 구현하기 위해 기존 평면회화의 기법과는 다른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었다.

물감으로 조각을 하듯이 쌓아 올리고 깎는, 어찌 보면 단순하게 보일 수 있는 방법이지만 미세한 결의 두께 차이로부터 비롯된 긴장감과 세세한 변화를 통해 율동감을 생성시키는 기법은 작가의 특별한 감각이 만들어낸 것이다. 멀리서 보면 흰색과 단색 면들이 교대로 축적된 것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수많은 선들이 다양한 깊이와 두께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시간은 작가에게 결코 정적인 대상이 아니며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 율동감을 불어넣는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렇듯 장광범 작품은 물감이라는 흐르는 재료를 가지고 섬세한 입체감을 나타내어 평면회화의 한계를 역이용한다. 그의 작품은 미디어아트가 담아내지 못하는 물질성을 담고 있으며 구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실존하게 해준다. 가상과 실존의 경계를 흐리게 다루는 미디어아트가 범람하는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실존하지 않는 시간의 형상을 만질 수 있게 함으로써 물질성과 실존의 문제를 더욱 생각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작가는 타고난 감수성으로 세상을 탐색하곤 하는데, 실제로 그는 보통 사람보다 색감의 명도와 채도를 더 미세하게 구분할 수 있는 눈을 지닌 듯하다. 그가 눈과 마음으로 보는 세상은 너무 세밀하고 섬세해서 언어로는 표현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유하고 관찰한 것을 시각작업으로 옮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있어서 조형예술작업은 그를 표현할 수 있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하고 정밀한 도구일 것이다.

작가가 발견한 미지의 형태,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형상들은 이처럼 작가의 감수성과 독특한 창작기법을 통해 끊임없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김주영 (파리 1대학 조형예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