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형들은 하나의 오브제로, 사람의 손에 들린 채로, 화면 어딘가 위치하며 번번이 그려진다. 헤지고 낡아 다시 꿰맨 인형을 쥐고 있는 장면에선 작가가 얼마나 그 인형을 아꼈는지 엿볼 수 있다. 그때는 몰랐겠으나 인형과 친구로 함께하며 지낸 시절이야말로 존재에 관한 의문이 엄습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돼지 껍데기로 만든 아버지의 서류 가방을 포함해 욕조 등도 이재현 작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인형들과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예술가 이재현에게 예술이란 기억의 호출이면서 현존재(Dasein)에 관한 담담한 일기이다. 오늘을 비추는 장치들이다. 고객들마저 모두 떠난 골프장에서 잔디를 깎는 사람, 욕조에 발을 담근 채 두 손엔 가방과 동물을 들고 있는 남자, 뭔가를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단란한 가족사진처럼 보이는 남녀(House on the hill, 2023) 등에서 그러한 흔적들은 발견된다.

이재현 Lee Jae-Hyun, Destiny, 2023, Oil, Mixed media on canvas, 80 x 47 cm. 사진 갤러리 조은
이재현 Lee Jae-Hyun, Destiny, 2023, Oil, Mixed media on canvas, 80 x 47 cm. 사진 갤러리 조은

이들 작업은 화면에 기록되고 채워지는 회화적 탐색이기도 하지만 일상의 한 부분으로, 흡사 그림일기와 같다. 그렇게 그는 예술로 ‘거기(Da) 있음(sein)’으로 현존재임을 확인한다. 동물과 사물, 또 다른 사람을 통해 타자를 통해 그곳에 있었음을 되묻는다. 이렇듯 이재현의 작품들은 지금의 존재성과 관련이 있다. 삶의 과정에서 접한 일상의 사건들, 기억들 역시 존재를 포용한 실존이라는 명사이다.”라고 평한다.

평면회화지만 부조에 가까운 작가만의 입체적 마티에르는 오일을 뺀 유화에 건축용 재료를 혼합해 완성된다. 이는 건축과 조각을 전공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재현 Lee Jae-Hyun, Alone Again, 2023, Oil, Mixed media on canvas, 145 x 97 cm. 사진 갤러리 조은
이재현 Lee Jae-Hyun, Alone Again, 2023, Oil, Mixed media on canvas, 145 x 97 cm. 사진 갤러리 조은

이재현 작가는 순수 회화로 전향한 후 2022년 개인전을 기점으로, 2023년 파리 개인전 그리고 화이트스톤갤러리 서울 개관전까지 신진 작가로서 성공적 행보를 이어 나가며 국내외 미술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재현 작가의 개인전《Alone Again : 다시 혼자》는 갤러리 조은(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55가길 3)에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