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사회고발 매달린 32년전과 결별 “이젠 아름다움 자체 표현하고파”
  • 22-03-23

 

사회고발 매달린 32년전과 결별 “이젠 아름다움 자체 표현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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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22-03-07 07:04:56  폰트크기 변경        
최명애 화백 ‘갤러리 조은’서 개인전

 

 

 
최명애 화백과 최근작 ‘빛과 색’(130.3 x 193.9 cm, acrylic on canvas, 2021)

 

 

 

1980년대 ‘달리는 사람들’ 연작

사회 문제 표현에 공들였지만 

그림이 지닌 ‘힘’에 한계 느껴

미술의 본래 역할에 대해 고민 

편안한 색감ㆍ부드러운 터치 

자연 그려낸  작품으로 돌아와 

주변의 나무ㆍ꽃에서 받은 느낌 

반추상 기법 통해 캔버스에 담아 

“지금 제 작품은 삶의 시적 표현”

 

[e대한경제=이경택 기자]  30여년의 세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최명애(70) 화백은 1980년대 ‘달리는 사람들’ 연작으로 핵문제나 환경문제 등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첨예하게 화폭 위에 표현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었다. ‘민중 미술’과는 궤를 달리하면서도 그는 미술이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캔버스 앞에 앉았었다. 그러나 정확히 32년 만에 최 화백은 우리 사회를 고발하는 작품이 아닌 편안한 ‘색감’과 부드러운 ‘터치’로 자연을 그려낸 작품들을 들고 미술애호가들 앞에 다시 섰다.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인근의 ‘갤러리 조은’에 들어서면 숲속의 나무와 바위, 꽃 등을 반추상 기법으로 표현한, 화사한 빛깔의 최 화백 작품 20여점이 방문객을 반긴다. 전시타이틀도 ‘GREEN DAYS’다.

“사회문제에 천착하는 작품들에 매달렸지만 ‘그림’이 지닌 힘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미술의 본래적인 역할’에 대해 오랜 기간 고민했습니다. 개인전 등으로 발표는 안 했어도 캔버스 앞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이념, 종교, 정치적 올바름보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갤러리 조은에서 만난 최 화백은 최근작들의 탄생배경을 그렇게 설명했다. 전시장에 걸려 있는 최 화백의 작품에 대해 정종효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특유의 운필법으로 숲이 가지는 친근감과 생명력을 시어와 같이 압축되고 음악처럼 추상적인 감성으로 화폭에 재현해낸다. 그의 작업방식은 ‘신 자연주의’ 미학에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 ‘빛과 색’ 앞에 서면 반추상 기법에 의해 아크릴 물감으로 화사하게 표현된 꽃과 나무, 바위 등 형상물들이 수면 위에 반짝이며 번지는 파문들처럼 지켜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준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1980년대에 우리 미술사에 자생적으로 등장한 ‘신(新)자연주의’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고 작가 자신의 삶과 체험에 기초해 그것을 조형언어로 만들어내는 개념을 총칭한다. 그래서 실제의 자연보다 더 자연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주의’로 분류되기도 한다.

 

 

 
 
 
최명의 화백의 초기 작품 ‘달리는 사람들’(세부ㆍ위)과 최근작인 ‘빛과 색’연작의 세부.  

작가의 화실은 관악산 일대 숲속에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그림 속의 나무나 꽃 등은 작가가 늘 접하는 자연물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그 자연물들로부터 받은 느낌과 영감을 반추상 기법으로 화폭에 표현했다. 그런 점에서 정종효 실장은 최 화백을 ‘신자연주의 기법’의 작가로 정의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30여년전 그의 초기 작품과 최근작들이 걷는 길은 확실히 다르다는 점이다. 1990년 소나무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 500호, 700호짜리 ‘대작’으로 공개했던 그의 ‘달리는 사람들’ 연작은 어딘가 쫓겨서 달려가는 사람들이 무채색으로 그려져 있는 작품들이었다. 실제로 최 화백의 당시 관심사는 황폐한 도시에서 맞닥뜨린 절박한 위기감이었다.

“지금의 제 작품은 삶의 시적 표현으로 보시면 됩니다. 시는 일상의 상징이며 추상이고 응축된 에센스입니다. 치유이자 화해이며, 긴 시간 유예 됐던 내밀한 에너지의 발현입니다. 이를 통해 그림을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직관적인 기쁨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작업에 매달리면 언젠가는 나와 타인의 가슴을 동시에 뛰게 하는 그림이 눈앞에 나타나리라고 믿습니다.” 전시는 이달 23일까지 계속된다.

글ㆍ사진=이경택기자kt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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