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 [시대藝인] "하루 15시간씩…" 집을 '그었다' 도시가 될 때까지
  • [이데일리]
  • 21-06-29

갤러리조은서 개인전 '원 데이' 연 작가 우병출
선 그리기 위해 풍경 고르고 사진 촬영
투시법 따라 라인 잡고 소실점 찾아가
0.6㎜ 세필로 수십만번 빽빽하게 그은
뉴욕·파리 등 세계곳곳 풍경 23점 걸어
"호흡 붓끝에 심어…세상 기품 담는다"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중독,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한 번도 겪지 않았다면 모르고 살 수도 있지만, 한 번 겪고 나면 모르는 척하는 게 도저히 불가능한 것, 그냥 그거다. 가령 저 프레임 안에 가둔 전경이 말이다. 딱 중독을 부르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우연찮게 시선을 던진 뒤론 감당이 안 되니까. ‘한 번 봤으니 이제 됐다’가 되지 않는 거다. 끊어질 듯 이어진 ‘선과 선’을 따라 보는 이의 마음을 줄 태우는데. 내맡기면 알아서 데려다주기도 한다. 거리를 따라 걷고 상점을 구경하고 물가에 앉았다가 빌딩 사이 조각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게. 그러다가 가끔 드론에 태운 듯 고공행진도 벌인다. 어느 건물 옥상이나, 언덕 꼭대기에 올려 깨알 같은 도시풍경을 너그러이 품게 해준다는 거다.

그래선가. 평일 오후 이곳이 북적인다. 이미 중독됐거나 중독될 준비가 된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고 나는 중이다. 여기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갤러리조은, 작가 우병출(52)이 개인전 ‘원 데이’(One Day)를 열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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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세세하고 정밀한 작업이지만 작가의 작품은 있는 그대로를 똑같이 옮겨놓는 극사실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작가의 선과 선 사이에는 기교가 아닌 ‘숨’이 들어 있기 때문. 그러니 작가에겐 이 예술이 인간의 한계치를 자주 뛰어넘어야 하는 자신과의 지난한 싸움일 수밖에. “끝까지 가보고 싶다. 작업을 하다가 체력과 정신력이 끝에 왔다 싶을 때 깨뜨리고 넘어서고 싶은 욕망이 있다.” 수행하듯 작업하는 작가는 여럿을 봤지만 ‘철인삼종경기’를 하듯 작업하는 작가는 드물다, 아니 없었다.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기도 하고, 내 그림을 봐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작품명을 오롯이 ‘씨잉’(Seeing·봄·보다) 하나로만 붙여둔 게 말이다. 그 간단명료한 작품명으로 작가는 세상의 모양은 물론 자신의 형편까지 집약한다. 전시에는 그중 23점을 걸었다. 작가 스스로가 빠지지 않고선, 아니 역시 중독되지 않고선 닿을 수 없는 경지에서 말이다. 그 진한 몰입감 덕분에 ‘횡재’한 건 관람객이고 컬렉터다. “물론 나는 전투적으로 그렸지만 보는 사람까지 그렇게 느끼면 곤란하지 않겠나” 하며 슬쩍 웃는다.

한 땀 한 땀 ‘장인’이 이탈리아에 있다고 했나. 한 줄 한 줄 ‘장인’은 여기 대한민국에 있다. 

전시는 7월 1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