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수 ‘Flow Bowl’

그릇 한 점에 담긴 인연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찻잔 하나가 빛을 발하고 있다. 세월을 품은 듯, 잔 표면이 거칠하다. 마치 추운 겨울, 서리 낀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담한 테이블 위에 놓여 있을 것 같은 정감 어린 그릇이다. 그릇은 객(客)의 언 손을 녹이고, 객이 다시 스스로를 위안하며 떠날 수 있게 할 것이다.

지난날 누군가의 온기가 찻잔을 데웠던 것처럼 오늘은 또 다른 누군가의 온기가 찻잔을 감싼다. 찻잔을 스친 연(緣)이 소리 없이 ‘공간’에 흐른다. 사람들은 이것을 ‘세월’이라 말하고, 작가는 이것을 밀도 높은 ‘침묵의 색채’로 그려냈다.

이동수 화백(51)의 ‘플로우-보울(Flow-Bowl)’은 하찮은 그릇 한 점에도 인연이 있고, 그것이 다시 어떤 존재를 되새김질할 수 있는 하나의 ‘은유’ 내지는 ‘상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게 한다.

작가는 단편적인 도구에 불과한 그릇 하나에도 사연이 있고, 그것을 스친 사람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동양적 사고관을 제시한다. 이동수 화백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부분보다는 전체 혹은 사물들의 상호 관련성이라는 것에 주목해요. 이는 모든 요소들이 서로 관련돼 있다는 동양적 사고관인 ‘종합주의(Holism)’의 개념이죠. 공명 현상을 떠올리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악기의 한 줄을 툭 건드리면 공명에 의해 다른 줄이 울리게 되듯 모든 것들은 서로에게 이런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죠.”

그릇을 감싸고 있는 밀도 높은 배경은 시간의 연속성과 공간의 무한함을 담기 위해 열 번 가까이 덧칠해 만들어졌다.

시간과 공간의 교감으로 멋스러운 한편의 회화의 시(詩)가 그렇게 그려졌다.

소개된 ‘플로우-보울’은 오는 2월 1일부터 서울 한남동 갤러리조은에서 열리는 이동수 개인전 ‘숨결의 시(始)’에 출품된 작품이다. 아쉬운 겨울의 끝자락 마음 속 깊은 울림이 되어줄 작품을 직접 관람하기를 권한다.

조은주 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