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 망치 숟가락…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Chon byung hyun

술잔 망치 숟가락…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한지 부조 작가 전병현 노화랑서 소품 100선展
엽서크기 작은 그림들 “일상이 곧 나의 저력”

  • 이향휘 기자
  • 입력 : 2015.06.13 04:01:04

 

image_readtop_2015_567631_14341356641977250사진설명16×23㎝, 캔버스 위 대리석 분말 등 혼합 미디어.

숟가락 두 개, 감 두 개, 통 안에 든 당근들, 중절모, 마늘, 머그컵, 망치….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상 소품들이다. 흔히 지나치거나 무시하기 십상이다. 이걸 그림 소재로 그리는 이들은 미술학원에 다니는 입시생들이 대부분이다. 전문 화가들은 구태의연한 정물 소재들을 그리려 하지 않는다. 옛 거장부터 화가 지망생들의 작품까지 비교대상이 너무 많고 그만큼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지 부조 작가’ 전병현(58)은 이런 점에서 용기를 냈다. 화가들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대상을 찾아 화폭에 담은 것이다. 엽서크기인 1호에서 4호짜리로 작은 소품 100선을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선보인다. 갤러리 벽에 소품들을 죽 옹기종기 걸어놓은 모양새가 친근하다.

화업 40년 된 작가는 “저력이라는 것은 오래된 소재와 일상에서 나오는 것 아니냐”며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노련한 붓질과 독특한 기법 없이는 어려운 전시기 때문이다.

전병현의 작품은 마치 박수근의 ‘화강암 기법’이 도드라진 그림처럼 질감이 우둘두툴하다. 프랑스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벽화를 오랫동안 전공한 그는 캔버스에 돌가루와 안료를 섞은 뒤 거친 붓질로 이 같은 질감을 일궈냈다. 물에 불린 한지죽을 일일이 캔버스에 붙여 색을 칠하는 기법 덕분에 ‘한지 부조 작가’라는 별칭이 붙었지만 이번에는 한지죽을 사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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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22.5×27.5cm, 캔버스 위 대리석 분말 등 혼합 미디어.

작가는 5년마다 기법과 소재를 바꾼다. 얼마 전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본사에서 인물 초상화 전시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인물들이 모둔 눈을 감았다. 작가는 “눈 감은 모습도 자기 자신의 모습인데도 사진에서는 다 지워버리지 않느냐”며 “눈을 감으면 얼굴의 나머지 부분들이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도 파주가 고향인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가세가 기울자 대학이 아닌 군대에 들어갔다. 행정병으로 일하면서도 그림을 끄적거렸다. 제대 후 공모전에 그림을 냈다가 덜컥 상을 받았다. 1982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고는 자신을 담금질해 ‘파리국립미술학교’에 들어가 험난한 유학의 길로 들어섰다. 파리에서 10년간 공부하면서 그가 찾은 것은 우리 한국인 정서와 풍경이다.

화가는 ‘싹공’이라는 아호도 갖고 있다.

초하루 삭(朔)에 빌 공(空)을 더해 만든 말로, 가득 차오르면 서서히 이지러졌다가 다시 차오르는 달을 닮고 싶어서 만든 아호다. ‘채움과 비움’은 그의 일관된 주제다. 주제나 소재를 멀리서 찾으면 그림이 낯설다. 우리 주변 가까이에서 찾으면 흔해서 외면당할 수도 있지만 강요하지 않는 특유의 편안함으로 복잡한 현대인에게 쉴 공간을 준다.

1~2호는 150만원. 3~4호는 300만원. 전시는 25일까지.

(02)732-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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